독서

[독서] 모순 - 양귀자

wony-wony 2025. 5. 7. 16:15

 

 

 

 

15p

그리고 뒤에 더 이상 이을 말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을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17p

이십대란 나이는 무엇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사랑이든, 일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히 늘어나는 것이다.

 

18p

홍수가 나버리도록 마음자리가 불편할 때까지 나를 참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인생을 방기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면서까지 무위한 삶을 견디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27p

나의 인생에 있어 '나'는 당연히 행복해야 할 존재였다. 나라는 개체는 이다지도 나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서 꼭 부끄러워할 일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나는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83p

아버지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아버지 스스로도 사람들이 자신을 그런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생각을 그쳐버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아무에게나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치욕이었다.

 

106p

언제나 최고의 셔터 찬스는 한 번뿐, 두 번 다시는 오지 않는다. 좋다고 느껴지면 망설이지 말고 무조건 셔터를 누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훌륭한 순간 포착, 그곳에 사진의 진가가 존재한다.

 

106p

안진진. 인생은 한 장의 사진이 아냐. 잘못 찍었다 싶으면 인화하지 않고 버리면 되는 사진 하고는 달라. 그럴 수는 없어,

 

127p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133p

가족 중 누구 하나의 불행이 너무 깊어버리면 어떤 행복도 그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152p

소소한 불행과 대항하여 싸우는 일보다 거대한 불행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일이 훨씬 견디기 쉽다는 것을 어머니는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157p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솔직함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솔직함은 때로 흉기로 변해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180p

거기 가을을 건너가고 있는 높고 푸른 하늘이 무심하게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184p

나는 타인들 앞에서 '나'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나를 장악할 수 없어 스스로를 방치해버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결단코 '나'를 장악하여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었다.

 

188p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말이 아니었다. 상처는 상처로 위로해야 가장 효험이 있는 법이었다.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218p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 시키는 감정이다.

 

277p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행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277p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 버린 내 아버지처럼.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이다.

 

300p

내게 있어 '진실'은 좀 식혀서 마셔야 하는 뜨거운 국물과 같다. 그러므로 숱하게 썼다 지웠다 하는 글쓰기에나 담아야 어울리는 무엇이다.

 

 

 

 

 

 


 

 

 

 

  • 술회(懷; 펼 술, 품을 회) : 마음속에 품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을 말함. 또는 그런 말.
  • 매일반(般; 한 일, 일반 반) : 결국 서로 같음.  ( ≒ 매한가지, 마찬가지)
  • 유악하다(하다; 부드러울 유, 약할 약) : 부드럽고 약하다 .
  • 성토(討; 소리 성, 칠 토) : 여러 사람이 모여 국가나 사회에 끼친 잘못을 소리 높여 규탄함.
  • 도화선(線; 인도할 도, 불 화, 줄 선) : 사건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원인.
  • 지청구 :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는 말. 까닭 없이 남을 탓하고 원망함.
  • 힐난(難; 물을 힐, 어려울 난) : 트집을 잡아 거북할 만큼 따지고 듦.
  • 저의(意; 밑 저, 뜻 의)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속에 품은 생각.
  • 흥감하다(하다; 일 흥, 느낄 감) : 마음이 움직여 느끼다. 흥겹게 느끼다.
  • 무렴하다(하다; 없을 무, 청렴할 렴) : 염치가 없다. 염치가 없음을 느껴 마음이 부끄럽고 거북하다.
  • 흔연스럽다(스럽다; 기뻐할 흔, 불탈 연) : 기쁘거나 반가워 기분이 좋은 듯하다.
  • 터럭 : 사람이나 길짐승의 몸에 난 길고 굵은 털, 아주 작거나 사소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노회하다(하다; 늙을 로, 교활할 회) : 경험이 많고 교활하다.
  • 면구하다(구하다) : 낯을 들고 대하기가 부끄럽다.( ≒ 부끄럽다, 낯부끄럽다, 낯간지럽다)
  • 생채기 : 손톱 따위로 할퀴이거나 긁히어서 생긴 작은 상처.
  • 경구(句; 경계할 경, 글귀 구) :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
  • 채근하다(하다; 캘 채, 뿌리 근) : 어떤 일의 내용, 원인, 근원 따위를 캐어 알아내다. 어떻게 행동하기를 따지어 독촉하다.
  • 음울하다(하다; 그늘 음, 답답할 울) : 기분이나 분위기 따위가 음침하고 우울하다.
  • 둔중하다(하다; 둔할 둔, 무거울 중) : 부피가 크고 무겁다.
  • 여일하다(하다; 같을 여, 한 일) :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
  • 침잠하다(하다; 잠길 침, 무자맥질할 잠) : 마음을 가라앉혀서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다.